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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주작가] 5월 추천책
작성일자 2022-05-06
 



 
당신의 자유를 위해 / 김지현
- 추천 책 : 장혜영, <어른이 되면>, 시월, 2021
(발췌는 쪽번호로만 표기)
 
어느 날 세상이 나를 어딘가로 격리시켜 그 안에서만 살도록 결정했다면,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의 가족과 세상이 그렇게 하는 것에 동의했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 이유가 나의 어떤 잘못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저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면. 그렇게 어떤 삶이 18년간 격리되었다면, 우리는 그 사회를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선천적으로 손과 발에만 땀이 많은 다한증이라는 특성을 가진 나는 이러한 신체적 특성이 ‘장애(“질병이 ‘낫는 것’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라면 장애는 ‘가지고 사는 것’이다. 질병은 치료의 대상이지만 장애는 적응의 대상이다.” p.116)’이며 사회적으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청소년기가 되어서야 알았다. 비교적 사회화가 덜 되었던 10세 무렵까지만 해도 내가 다른 사람보다 손에 땀이 많다는 걸 의식하거나 누군가가 나의 이러한 특성을 놀림감으로 삼은 적이 없었다. 일상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필기할 때 종이가 땀에 젖는다거나, 버스 손잡이를 잡으면 땀으로 미끌거리는 등) 그게 ‘문제’가 된다고 인식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후, 누군가 내 손을 잡아본 뒤 미간을 찌푸리며 “으, 땀.” 하고 탄식하는 걸 듣고서야 손에 땀이 많다는 게 이 사회 안에서는 이상한 특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처음 만나는 사람, 내가 손에 땀이 많이 난다는 걸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까지, 내 주변 모든 사람으로부터 축축하게 젖은 내 손에 관해 늘 한마디씩 들으며 살아왔다. “손이 왜 이렇게 젖어 있어요?” “손 줘 봐, 말려줄게.” 하는 식의 완곡한 표현이었음에도 누군가 나의 특별한 특성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크나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가 약속되어 있으면 악수 나눌 것부터 걱정이 되고, 우연히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면 손을 맞붙잡고 반가움을 나누는 표현 방식에 대해 두려움이 앞섰다. 누군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손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책에 싸인하기 등)에 부담감이 크고 누군가 이러한 특성에 관해 질문이라도 하면 온몸에 땀이 났다. 분명 다한증은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나의 신체적 특성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사회 안에서는 ‘이상한’ ‘불쾌감’을 유발하는 문제가 되었다. 타인에게 위해가 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가끔 공공장소에서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보고 듣고 말하고 이해하는 모든 기능이 이상 없이 작동하고, 신체보조 기계의 도움 없이 목적지까지 찾아갈 수 있고,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다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를 이해하는 인지 능력을 가진 ‘정상’에서 벗어난 존재들. 사람을 기능적인 측면(제대로 듣고 말하고 인지하는 기능성에만 초점을 둔)에서 봤을 때 정신적, 신체적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불편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실은 신체적 특성 자체에 ‘불편’이 함의된 것이 아니라 기능적-정상인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불편’한 존재들 말이다. 기능적-정상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세상은 존재의 다양한 특성을 ‘문제’로 치부하며, 다양한 신체에 맞추어 환경을 변화시키는 대신 정상치에서 벗어난 존재를 사회적으로 제거하는 편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공고히 한다. 우리는 존재의 다양성을 제거하는 방식을 ‘보호’라고 부른다.
장애인복지시설에서 18년간 살아온 발달장애(“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를 묶어서 이르는 ‘발달장애’라는 단어는 이미 장애의 특성 자체를 긍정적으로 호명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p.117)를 가진 여동생의 삶이 ‘보호’받고 있었던 것 아니라 삶이 ‘제거’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언니는 동생과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복지시설 대신 자신이 ‘보호자’가 되기로 한 것이 아니라 동생의 ‘자립’을 꿈꾸며 사회 속으로 함께 나온다. 장애인의 자립. 우리 사회에서 이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처럼 보인다. 사회가 정한 엄격한 정상의 기준치에 근접한 듯 보이는 사람조차 자립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장애인이 자립한다는 건 너무 큰 이상이 아닐까. 하지만 이 상상 불가능성에 매몰되기 전에 우리가 이미 어떤 전제 위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존재의 자립과 자유의 (불)가능성은 누가 결정하는가? 왜 누구는 자립할 수 있고(자립해도 되고), 누구는 안 되는가? 자립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혜정이의 자립에 대해 고민할 때 나에게 명확한 해답이 되어준 것도 바로 삶이란 곧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확신이었다. (…) 우리는 결국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p.92

자립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삶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연결되는 관계망 안에서 자립할 수 있다. 획일적인 기준치로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고, 약한 존재도 긴밀한 관계망 안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부정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나 역시 약한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의 인권을 구제하기 위해,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안전을 위해, 나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사회로부터 함부로 지워진 더 많은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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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국회의원(정의당)이 쓴 산문집입니다.
*18년간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살던 발달장애를 가진 여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 세상과 부딪히며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했어요.
*5월 13일 화명동 무사이에서 장혜영 의원과 <어른이 되면> 북콘서트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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